외교관이 경험한 한•중•일 문화 - 유주열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Jan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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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이 경험한
한•중•일 문화

 

 

 

 

유주열
前 駐나고야 총영사
前 주중대사관 총영사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신라 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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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의 외교관 생활 중 20년을 해외 공관에 근무했다. 중국에서 9년, 일본에서 6년 모두 15년을 중국과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 문화와도 비교하게 됐다.한•중•일 3국은 서양의 여러 나라와 비교해 한자 문화권과 불교 및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비슷하면서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다름도 각국의 지리적인 차이와 국민성 따라 달라진 것 같다.

한•중•일 3국은 같은 불교국가로 사(寺)라고 부르는 절이 있는데 탑은 지역의 기후 풍토에 따라 재질이 다르다. 중국은 흙(황토)으로 구워 낸 벽돌로 쌓아 만든 전탑(塼塔)이 많고 한국은 화강암 같은 좋은 석재를 구할 수 있어 석탑이 주를 이룬다. 비가 많이 내리고 온난한 기후의 일본은 삼나무 같은 목자재 조달이 용이해서 목탑이 많은 것과 같다.
 
또한 젓가락 문화의 공통점이 있지만 젓가락의 길이와 재질이 서로 다르다. 중국은 여럿이 둘러 앉아 식사하는 관계로 멀리 있는 음식을 집기 위해 젓가락이 길다. 기다란 젓가락의 내구성을 위해 대나무가 이용된다. 일본은 숟가락을 쓰지 않고 모든 음식을 젓가락으로 해결한다. 밥을 먹을 때도 젓가락을 이용하므로 섬세한 젓가락이 필요하다. 대개 나무젓가락인데 끝이 가늘고 국수 같은 것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젓가락 끝에 나사 같은 홈이 파여 있다.

우리는 은이나 청동이 산출돼 금속으로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만들어 썼다. 일본에서는 식기가 대개 가벼운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식사는 주로 젓가락을 사용하므로 밥그릇을 들고 먹지만 우리는 금속이라 무거워서 손에 들 수 없다. 따라서 밥상에 밥그릇과 국그릇을 모두 놓고 숟가락을 사용하고 반찬을 집어 올릴 때만 젓가락을사용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비슷한 문화이다. 한•중•일 3국 문화는 수 천 년 내려오면서 중국이 그려놓은 무늬(紋)에 한국과 일본이 독창적으로 형성한 것이 많은 것 같다. 같은 말이라도 오해에 의해 서로쓰임이 다른 것도 있다.

정종(正宗)이라는 말을 예로 들어 보자. 정종은 ‘마사무네’ 라는 대표적인 일본 술(日本酒) 브랜드이지만 중국어로는 원조(元祖)라는 뜻이 있는 보통 명사(또는 형용사)이다. 중국에서 들어 온 이 말의 뜻을잘 모르고 일본에서는 술 브랜드로 사용한 것이다. 한•중•일 3국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서양처럼 황금이 아니고 옥이었다. 완벽(完璧)이라는 글자가 옥의 온전함을 이야기 하듯 중국이나 한국의 왕이 쓰는 면류관은 옥관이다. 옥이 달린 12줄은 황제의 제관(帝冠)을 의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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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킨카쿠지
 


9줄은 제후의 왕관(王冠)으로 구분된다. 일본에서도 옥이 중시돼 일본 천황의 3종 신기에 곡옥(曲玉)이 들어 있다. 일본에서 황금은 장식용으로 사용됐다. 얇은 종이처럼 잘 늘어나는 황금의 성질을 이용해 황금 종이로 집의 외벽을 장식했다. 교토의 킨카쿠지(金閣寺 정식명칭은 鹿苑寺)는 이름 그대로 황금 종이로 입힌 정자가 오후가 되면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신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일본을 찾아 온 중국(宋)의 무역상들은 일본은 황금으로집을 지을 정도의 황금이 풍부한 나라로 알고 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유럽으로 건너 가 콜럼버스가 배를 띄운 것은 황금의 나라 일본을 가기 위해서였다.

중국의 황제나 공자의 이름(諱)을 기피하는 피휘(避諱)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이어져 이름을 지을 때 부모나 조상의 이름자를 피해야 한다. 불교의 관세음보살이 당 태종 이세민의 이름을 피해 세(世)가 빠지면서 관음보살이 된다. 큰 언덕이라는 대구(大丘)가 공자의 이름자인 구(丘)를 피해 대구(大邱)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면에 일본에는 편휘(偏諱 헨키)라는 제도가 있다. 편휘는 피휘와 반대가 된다. 부모와 조상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자를 자신의 이름 속에 일부러 넣는 풍습이다. 과거 봉건 영주 시대에는 주군이 가신에게 자신의 이름자를 하사해 충성을 확보했다. 아베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이름자에는 그의 고향 야마쿠치(山口)의 위인(偉人)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의 이름자(晉)가 들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 단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한•중•일 3국에서 서양문화와 대대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한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의 학자들이 번역 의 필요에서 만든 조어가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신문 지상에 오르는 한자 단어의 70%이상이 메이지 유신 후 만든 글자라고봐도 틀리지 않는다. 한자 조어는 중국어와 일본어의 언어 문법상 조금씩 다르다.

 


중국어의 기본 문형은 영어처럼 ‘주어+동사+술어(목적어)’로 나열되고 일본어는 우리말처럼 ‘주어+술어+ 동사’ 순서가 된다. 번역 조어의 경우에도 이런 어순에 따라 만들기 때문에 번역어가 중국어인지 일본어인지 구분할 수 있다. 금융(金融 돈을 융통하다)은 일본어이며, 외국의 술 문화와 같이 들어 온 건배(乾杯 잔을 비우다)는 중국어이다. 중국에는 글자에서 연상되는 미신적인 편견이있다. 일본에서는 비가 많이 온다. 아열대 성 기후의 남쪽은 비가 왔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집에 우산이 많이 필요하다. 간단한 선물로 접이우산을 주고 받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우산을 주면 기겁을 한다. 우산의 산(傘)은 산(散 헤어진다는 뜻)과 같은 발음으로 우산선물은 절교의 의미로 본다. 시계 선물도 금한다. 보이는 곳에 시계를 잘 두지 않는다. 시계를 중국에서는 종(鐘)이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끝낸다는 종(終)과 발음이 같아서 기피하는 것이다. 과일에도 사과를 좋아하고 배를 기피하는 것도 과일의 명칭 때문이다. 사과(苹果)는 평화로움(平)를 연상하고 배(梨)는 이별(離)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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