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혐오 북한군 오하사의 기생충 - 서 민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Jan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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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혐오
북한군 오하사의 기생충

 

서 민
단국대 의예과 교수

 

 

 서민, 출판사 샘터

 

 

“한국 사람에서 이렇게까지 큰 성충이 장관 내에 발견된다는 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2017년 11월, JSA를 통해 북한군이 귀순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군, 그러니까 오하사는 총알 다섯 발을 맞았고, 그로 인해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신세를 져야 했다. 수술이 끝난 뒤 가진 이국종 교수의 브리핑에서 사람들은 오하사의 몸에서 기생충이 나왔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오하사의 생사를 좌우하는 것은 폐와 골반, 그리고 장을 망가뜨린 총탄이건만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기생충이었다.

오하사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은 회충이었다. 기생충이라고 해서 못사는 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회충은 주로 가난한 나라에 분포한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회충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인데, 그 낙후성에서 우리나라 1960년대와 비슷할 북한군의 몸에서 회충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기생충에 감염돼 있어 내가 몸담은 병원에서 회충이나 편충에 감염된 탈북자를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오하사의 몸에 기생충이 있다고 했을 때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와야 한다.

갑 : 기생충이 있다니, 북한은 참 낙후된 사회군! 우리도 못살 때 기생충 참 많았는데.
을 : 그러게. 국민들 건강에 써야 할 돈으로 미사일이나 만드니 그런 거지.
갑 : 빨리 통일이 돼서 북한 주민들을 기생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할 텐데.
을 : 우리 그럼 통일을 기원하며 한 잔 하세.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갑 : 으악. 기생충이 있다니, 게다가 27센티나 된다니 너무 징그러워.
을 : 그러게. 저런 게 어떻게 사람 몸에 있을 수 있지? 혹시 나한테도 있는 거 아냐?
갑 : 나도 요새 속이 허한 게 기생충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최근 몇 년간 구충제를 통 안 먹었거든.
을 : 야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 구충제나 사먹으러 가자.

실제로 오하사의 기생충 감염 소식이 알려진 뒤 구충제를 먹으러 간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단다.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기생충을 걱정하지 않게 된 건 오래 전의 일이다. 기생충 박멸을 위한 정부의 노력, 그리고 급속히 이뤄진 경제발전 덕분에 1992년 국내 기생충 감염률은 5% 이하로 떨어졌고 지금은 해안가나 강가를 제외하면 기생충 감염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과 우리나라는 엄연히 다른 나라이며 오하사의 기생충은 그 나라를 지탱해 온 체제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얘기일 뿐이다. 북한에 굶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밥한 공기를 더 먹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오하사의 기생충이 우리가 구충제를 먹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사회가 가진 기생충 혐오 때문이다.

우리에게 기생충은 귀신과 비슷한 존재다.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르고 일단 나타나면 큰 해를 끼친다. 귀신을 피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또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가 기생충에게 당했다면 그건 곧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 된다. ‘13살 아이에서 3.5미터 기생충이 나왔다고? 으악. 구충제 먹으러 가야겠다. 학교 급식에서 기생충이 나왔다고? 으악. 구충제 먹으러 가야겠다’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2015년 바다생선에서 기생충이 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한동안 생선회를 먹지 않았다. 내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아, 생선회 절대 먹지 마라. 기생충 있단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기생충 학자에게 기생충을 걱정하라고 전화하는 어머니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 뉴스 이전 우리는 열심히 생선회를 먹어왔고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긴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사람들은 이런 객관적인 진실을 외면한 채 공황상태에 빠졌다. 기생충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 알수 있는 사례다.

혐오는 상당부분 무지에서 비롯된다.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기생충에 걸리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기생충에 걸린다해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기생충에 대해 이렇게 까지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사람이 기생충을 갖고 있던 조선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으리라.

갑 : 자네, 입에 뭐가 나오려고 하는데, 혹시 회충 아닌가?
을 : 아,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어째 목이 좀 답답하더니만.
갑 : 하하, 그 회충도 자네 몸이 답답했나보군. 그러니 이렇게 밖으로 나왔지.
울 : 이 사람, 은근히 나를 디스하네? 내가 답답한 사람이라는 거야?
갑 : 하하하, 이거 들켰군. 오늘 술은 내가 사지.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기생충 혐오는 우리나라에서 기생충이 멸종되다시피 한 결과일지 모른다. 인간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를 20만년으로 놓고 봤을 때, 우리는 그 대부분의 시간을 기생충과 함께 보냈다. 우리 조상들도 대수롭지 않게 대했던 기생충을 의학이 발달해 폐와 심장을 이식하는 지금 시대에 두려워하는 건 지나치다. 기생충이 많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기생충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비정상적인 혐오를 멈출 수 있다는 얘기다.그래서 말씀드린다. 기생충 책을 읽자. 지식은 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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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메구로 기생충박물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기생충에 걸리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기생충에 걸린다해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기생충에 대해 이렇게까지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