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이우환,
세계 미술의 중심에 서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관에서 대형 회고전 개최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주목할 만한 회고전이 열렸다.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우환 작가가 그 주인공으로, 구겐하임에서의 한국작가 회고전은 故 백남준 이후 처음이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 작품활동을 해온 이우환 작가는 회화·조각·설치미술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구겐하임 미술관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후기 미니멀리스트 미술의 가능성을 근본적을 확장한 인물로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창간호에서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독특한 미학으로 풀어낸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통해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인생을 들여다 보았다.
점과 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전하다 달팽이 모양의 외관과 나선형의 독특한 공간이 특징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로비에는 철판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돌이 대화하듯 놓여져 있다. 나선형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텅 빈 캔버스에 점 하나만 그리거나 서예의 획 같은 선들이 춤추는 듯한 그림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이우환 작가는 어린 시절 배웠던 서예와 동양화의 두 가지 기본 단위인 점과 선을 구성 요소로 삼아 시각과 개념을 연계하는 다양한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이 구겐하임 미술관 전관에 걸쳐 전시되면서 세계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 작가는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해 왔다.
그는 식민지 조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타국 땅을 돌며 외롭게 활동했지만, 화가이자 조각가인 동시에 이론가로서 자신의 예술을 확고히 다져 나갔다. 특히 사물 고유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전위적 예술운동인 ‘모노하’의 중심인물로, 한국과 일본 미술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해온 그는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 존재와 비존재, 비움과 채움, 만든 것과 만들지 않은것의 양면성을 끌어안는 독자적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지의 캔버스에 하나의 또는 몇 개의 점을 찍는 것에서 작품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우환 작가는 “터치와 논터치의 겨룸, 상호침투의 간접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여백 현상이야말로 회화를 열린 것이 되게 해준다”고 전한다. 또한 나무와 돌, 점토, 철판 등 자연 소재를 ‘있는 그대로’ 전시장에 놓아둔 작품들은 공간, 위치, 상황에 따라 각각의 고유성을 발현하는 동시에 묘한 울림으로 전달된다. 돌과 철판 그리고 장소의 어우러짐은 인간과 자연, 산업사회의 대화를 꾀하고자 한 그의 의도였다.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화면에 찍힌 점들을 바라보기 보다 점과 여백, 점과 점의 관계 더나아가 그림과 그림이 걸려 있는 공간 전체의 관계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예술을 향한 끝없는 도전
이우환 작가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두서너 시간씩 작업을 한다. “손을 놀려주지 않으면 굳어버린다”는 그의 말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현대적이면서 동양미가 느껴지는 그의 작품은 지난 10년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고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경매에 자신의 작품이 자주 나오는 것에대해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힌 그는 앞으로 팔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평생 추구해온 예술은 일상성보다 좀더 멀리 바라보는 것으로, 눈 앞의 일상보다 호기심과 꿈을
일깨우는데 노력했습니다. 오늘날은 알기 쉬운 구상성이 두드러지는 시대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하더라도 눈 앞에 펼쳐진 작품을 통해 에너지와 긴장감을 느끼거나 혹은 신선한 우주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우환 작가. 그는 현대미술과 관객의 소통을 꿈꾸며 현재 대구시가 추진 중인 ‘만남의 미술관’ 건립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계 무대에서 초월적이면서 독창적인 시도를 즐기는 이우환 작가. 그의 도전정신은 현대 미술사조를 이끌어낸 핵심이며, 앞으로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