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박사’로 유명한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가 우리나라 토종생물의 생태와 정보를 생생하게 담은 ‘괴짜 생물 이야기’(을유문화사)를 발간했다. 지난 3년간 교수신문에 연재한 칼럼 가운데 핵심만 추려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우리 산하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진기한 생물의 생태가 권교수의 예리한 눈을 피하지 못하고 속살을 드러냈다.
우선 책 제목에 왜 괴짜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궁금했다.
“괴짜가 세상을 바꾸지 않습니까? 누구나 남과 조금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글이 다 ‘괴짜’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아주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용은 전부 ‘진짜’입니다. 동물, 식물, 미생물, 심지어 사람까지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면서 찾아낸 것이니 말이죠.”
인간부터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채로운 생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주제별로 4~5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쉬운 문체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과학’하면 어렵게만 생각하는 일반인들도 말하듯 쓰인 그의 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그만큼 재밌다.
권교수는 어떻게 동식물의 생태 연구에 평생을 바치게 됐을까. 그 시작 역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니 그때부터 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것으로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전공을 고민하던 중 지금은 돌아가신 형님께서 고등학교 3년간의 제 성적표를 쭉 훑어보시더니 다른 과목은 빼고 생물은 모두 ‘수’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까!.저도 놀랐지요.”
생물이 자신의 운명인 것 같다는 권 교수. 그는 과학 에세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고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꾸준하게 집필활동을 할수 있었을까?
“그저 글 쓰는 일이 좋았습니다.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죠. 누구 말마따나 글쓰기를 하지 않았으면 노후의 삶을 무위(無爲)하게 지낼 뻔 했습니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웁니다. 저는 앎의 기쁨을 제대로 알고 누리는 행운아입니다. ‘작가는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매사를 예사로 보지 않고 꼼꼼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오랫동안 집필을 하게 된 배경인 것 같아요. 치매 예방도 되고요.”
생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생계를 잇기 위해 고교 교단에 섰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그는 서울사대부고 재직 시에도 주말마다 대학원 강의를 들으며 박사학위에 도전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달팽이를 채집해 이학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겪었던 경험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거문도 밭가에서 가랑잎을 들치며 작은 달팽이를 잡고 있었어요. 갑자기 예비군들이 나타나 나를 간첩으로 여기고 내 주위를 쫙 둘러싸고는 ‘손들어!’ 하고 소리 지르는데 정말 기가찰 노릇이었죠. 사대부고 교사라고 증명을 보여줘도 믿지를 않았어요. 결국 파출소까지 끌려가는 소동 끝에 풀려났죠. 죽을 고비도 참 많이 넘겼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한 권 교수의 생물 탐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벌써 그는 우리말 속담과 관용어에 녹아있는 또 다른 생물이야기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연과학도인 그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쉽게 공부하고 돈 되는 분야를 찾는 것을 누가 나무라겠습니까. 다만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있어요. 제발 부모들이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할수 있도록 놔두라는 것입니다. 너무 자식 나무가지를 부모의 마음대로 굽히고 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뿐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두면 이공계 기피현상 같은 일은 점차 없어질 것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권오길 교수. 생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매서운 겨울 추위를 잊게 할 만큼 뜨거웠다.
글 장길수 (전자신문 논설위원)